미야자키 츠토무, 사형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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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성은 17일, 도쿄, 사이타마 일대에서 1988~1989년에 걸쳐 여자아이 4명을 유괴, 살해한 혐의로 살인 등의 죄로 사형이 확정된 미야자키 츠토무 사형수(45)의 사형을 도쿄구치소에서 집행했다고 발표했다. 어린 아이가 표적이 되고, 피해자의 집으로 유골을 보내는 등 충격적이었던 이 사건은 발생 후 20년이 지나 형이 집행되게 되었다.

그 외에 같은 구치소에서 1인, 오사카 구치소에서도 1인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형집행은, 하토야마 법무상이 작년 8월에 취임한 이래로 작년 12월에 3인, 금년 2월에 3인, 4월에 4인에 이어 4번째로, 총 13인이다. 하토야마 법무상은 2개월에 한 번 간격으로 집행명령을 계속 내리고 있다. 정체되어 있던 집행이 93년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이후, 법무상 한 사람 밑에서 집행된 것으로는 나가세 전 법무상의 10인을 넘어 최다 기록을 세웠다.

미야자키 사형수는 1. 1988년 8월, 사이타마현 이루마시에서 4세 여자아이를 차로 유괴하여 산 숲에서 교살, 2. 1988년 10월 사이타마현 한노시에서 7세 여자 아이를 유괴하여 산 숲에서 교살, 3. 1988년 12월, 사아타마현 카와고에시에서 4세 여자 아이를 유괴하여 산 숲에서 교살, 4. 1989년 6월, 도쿄구 코토구에서 5세 여자 아이를 유괴 직후 차 안에서 교살, 5. 1989년 7월, 도쿄구 하치오지시에서 6세 여아를 벌거벗겼다. (여자 아이의 연령은 당시)

피해아동의 집으로 유체의 뼛조각이나 "燒(불탐)" "증명" 등이 적힌 종잇조각이 든 골판지가 배달되는 외에, "유골이 든 골판지를 둔 건 바로 접니다"라고 적힌 범행성명이 보도기관에 보내지는 등의 상황으로 인해, "극장형 범행"으로 일컬어졌다.

미야자키 사형수는 당초부터 살해 등 사실을 시인하고 있었으나, 공판에 이르러서는 "'또 한 사람의 나'가 나타났었다" 등의 진술을 하였으므로 형사책임능력 유무가 최대 쟁점이었다. 1심의 감정으로는 책임능력을 완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에서 한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까지 3가지로 나뉘었었다.

1997년 4월의 도쿄지방재판소판결로는, "인격장해의 범주 내이다"라는 감정을 채용, 책임능력이 있었다고 인정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2심 도쿄고등재판소도 2001년 6월에 완전한 책임능력이 있었다고 인정하였다. 2006년 1월에 최고재판소가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범행이다"라면서 피고측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여, 같은 해 2월에 사형이 확정되었었다.

법무성에 의하면, 그 외에 집행된 것은 도쿄구치소의 무츠다 신치 사형수(37)와 오사카구치소의 야마자키 사형수(73).

무츠다 사형수는 1995년 12월, 형과 공모하여 근무하고 있던 업소의 도내 사무소에서 점장(당시 33)과 경영자(당시 32)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지갑을 강탈했다. 두 사람의 시체를 나무곽에 넣어 콘크리트에 묻은 후, 이바라키현의 카시마 항구에 버렸었다.

야마자키 사형수는 1985년 11월, 공범인 남자와 공모하여 지인인 센다이시의 주부(당시 49)의 목을 끈으로 졸라 교살하고, 자살로 위장하여 보험금 약 700만엔을 수령하였다. 1990년 3월, 다른 남자와 함께 보험금 목적으로 카가와현의 남성(당시 48)의 목을 쇠 아령으로 때려서 살해하고, 시체를 코치현 내에 유기하였었다.


[감상]
우리도 제발 극악범죄인은 사형 좀 하자. 우리라고 이 정도(?) 범인이 없는 건 아니잖은가? 생계형 범죄나 시국 사범이 아니라 연쇄 살인 등 죄증이 분명하고 오판의 가능성이 적은 범죄에 한정한다면 사형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형집행 안 한지 오래 되었다는 핑계를 대는 건 당시 정부 관계자들의 체면치레를 위해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첨부 : 미야자키 츠토무 범죄 일지] -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은 보지 마세요..



제1사건 : 1988년 8월 22일, 4세 여자 아이(이하 KM)이 유괴, 살해됨. 살해 후 얼마 지나서 사후경직으로 굳어진 사체에 외설행위를 하는 비디오를 찍었다. 동기에 대해 간이감정 문진기록으로는, 왜 사진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2차원보다는 3차원이 좋았다"라고 대답했으나, 제1차 감정에서는 "잘 모르겠다", 최후의 피고인질문에서는 "갑자기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었다"고 하는 등 증언이 애매했다.

제2사건 : 1988년 10월 3일, 7세였던 소학교 1학년 여자 아이(이하 YM)이 유괴, 살해됨. 이번엔 곧바로 외설행위를 하였으나, 그 때 아직 희미하게나마 숨이 붙어있었던 모양이라 발이 움찔움찔하였다는 범인의 증언이 있다. 동기에 대해 공술조서에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스릴이 있었다", 제1차 감정에서는 "잘 기억 안 난다" "가장 인상이 없다"고 하여 역시 불명료.

제3사건 : 1988년 12월 9일, 4세 여자 아이(이하 NE)가 유괴, 살해됨. NE는 실금했다. 초조했던지 범인은 피해자를 산 숲에 던져서 버렸다. 12월 15일, NE의 전라 시체가 발견. 12월 20일, NE 집으로 엽서가 도착함. 이 시체를 발견한 후, TV에서 피해자의 부친이 "죽었어도 찾아내어서 다행이다"고 발언한 것을 본 범인이 다른 피해자 시체도 보내줄 것을 계획했으나, YM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범행성명 : 1989년 2월 6일, KM 집에 종잇조각과 뼛조각이 든 골판지상자를 놓고 옴. 2월 10일에는 "今田 勇子" 명의로 KM 사건의 범행성명이 아사히신문 도쿄본사에 우송되었다. 11일에는 같은 내용의 범행성명이 KM 집에 우송. 3월 11일, 같은 명의의 고백문이 아사히신문 도쿄본사와 YM 집에 우송됨.

제4사건 : 1989년 6월 6일, 5세 여자 아이(이하 NA)가 유괴, 살해됨. NA의 손가락을 뜯어서 장에 찍어 구워먹었다. 또한, 비닐주머니에 담아서 피를 마셨다. 11일에 NA의 난도질당한 유체가 발견됨.

현행범체포
1989년 7월 23일, 도쿄도 하치오지시에서 외설사건 중에 현행범체포.
8월 9일, NA의 살해를 자백.
8월 10일, NA의 머리 발견. 당일 언론이 냄새를 맡다.
8월 13일, KM, NE의 유괴살인을 자백.
9월 1일, 경찰청 광역중요지정 117호로 지정.
9월 2일, 검사가 기소에 착수하다.
9월 5일, YM의 살해를 자백.
9월 6일, 이츠카이치町에서 YM의 유골 발견.
9월 13일, KM의 유골 발견.

여자 아이를 살해할 때마다 자택에 짚인형을 두고 방을 어둡게 한 후, 머리에 머리띠를 두르고 양초를 여럿 불붙여놓고서 거무스레한 옷을 옷에 걸치고 손을 아래 위로 저으면서 조부 부활의 의식을 집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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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구츠치 | 2008/06/17 12:48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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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NoSyu의 주저리 주저리 :.. at 2008/06/17 20:04

... 라... 살펴보니 20년 전에 황당한 사건이 있었군요.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검색해보았습니다. 오늘 피의자의 사형 집행일이라 따끈따끈한 글이 있네요.;;; '미야자키 츠토무, 사형집행.' '미야자키 츠토무 사형집행' 여러 번 봐도 황당한 사건입니다. 왜 그렇게 행동해야했는지가 상당히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애니메이션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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